삼전도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가 결국 1637년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복 의식으로 인조는 청나라 태종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기를
반복하는 삼배구고두를 했습니다. 청나라 태종은 항복 의식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공덕을 새긴 삼전도비라는 비석을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하였습니다.
삼전도비의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이지만 문화재 지정 당시의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라고 지어졌습니다. 비석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지닌 유적이지만 비석의 앞면에는 몽골 글자, 오른쪽에는 만주 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비문이 쓰여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삼전도의 굴욕
삼전도는 조선 시대에 서울과 남한산성을 이어 주던 나루예요.
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에 있었어요.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남한산성에 피신했었어요.
그러다 45일만에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었지요.
인조는 세자와 신하 500여 명을 이끌고 삼전도에 나와 청나라의 황제 앞에
'삼궤구고두'를 올리고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지요.
삼궤구고두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에요.
청나라 황제는 인조의 항복을 받고 자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에
삼전도비를 세우게 하였어요. 굴욕적인 비문을 쓰고자 하는 신하가 없었는데,
인조의 간곡한 부탁에 이경석이 글을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어요.
오준은 치욕을 참지 못해 자신의 오른손을 돌로 짓이겨 못 쓰게 만들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해요.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주산성을 다녀와서(2019. 2. 10. 일요일) (0) | 2019.02.10 |
---|---|
서울 도심속의 사찰 봉은사에서,,,( 2018. 10. 6. 토요일 ) (0) | 2018.10.13 |
의성 탑리 오층석탑, 문익점 선생, 조문국사적지(2017.4.23. 일요일) (0) | 2017.04.23 |